본문 바로가기
격투,무술

주짓수의 역사, 마에다 미츠요의 선물

by K태형 2023. 2. 19.

주짓수 수련자
주짓수 수련자

마에다 미츠요

유도의 창시자 가노 지고로의 제자 마에다 미츠요는 유도의 강함을 알리기 위해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강자들과 대결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1915년에 브라질에 체육관을 차리게 되며 정착하게 됩니다. 이때 유도가 아닌 유술이라는 이름으로 지도를 하였는데, 그 이유로는 마에다의 스승이자 강도관의 관장 가노 지고로가 타 무술과의 시합을 허락하지 않았는데 이를 지키지 않은 마에다 스스로가 가노 지고로와의 의리를 지키려 유도 대신 유술이란 이름을 썼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아무튼, 브라질에 정착하게 되었고 그러던중 그레이시 가문의 도움을 받게 되어 이를 보답하고자 유술을 가르치게 됩니다. 그 가르침을 받은 사람이 바로 그레이시 주짓수의 최고 수장 카를로스 그레이시입니다.

 

엘리오 그레이시

그렇게 약 3년간 유술을 익힌 카를로스 그레이시가 나중엔 도장을 열어 지도를 하기 시작했고, 카를로스의 동생인 엘리오는 유술을 배우길 원했지만 선천적으로 몸이 약하고 왜소했던 탓에 카를로스가 이를 거절합니다. 그렇게 수련은 못했지만 수련하는 모습을 몰래 보며 익혀나갔고, 그렇게 익혀나간 기술들을 자신에게 맞게 바꿔나가기 시작하여 유술에서 주짓수로의 발전이 되어갔습니다. 어느 날 카를로스가 부재중일 때 엘리오가 지도를 했었고, 수련생들의 반응이 좋았습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카를로스는 엘리오를 인정하여 유술 수련을 함께 하기 시작합니다. 이후 카를로스가 바빠짐에 따라 지도하는 빈도가 줄어 엘리오가 주로 지도를 하게 되었죠.

 

마에다 미츠요처럼 엘리오 그레이시 역시 강자들과의 대결을 하여 주짓수의 명성을 높혀나갔습니다. 그러던 중 1951년 유도가 기무라 마사히코와 대결을 할 기회가 생겼고, 힘이 압도적으로 강했던 기무라에게 팔이 부러지는 부상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항복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세컨드의 타월 투척으로 엘리오가 패배하게 되었고, 이때 엘리오의 팔을 부러뜨린 기술이 그 유명한 기무라 락입니다. 기무라 마사히코의 이름을 따지은 것이지요. 엘리오는 선천적으로 몸이 약해 기술만으로 강해진 타입이었고, 기무라는 엄청난 괴력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실제로 기술적으로 큰 차이는 없었으나 압도적인 힘의 차이가 승패를 가른 걸로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비록 패배하긴 했지만 이 대결로 인해 주짓수와 엘리오는 더욱 많이 알려지게 되었고 이후 엘리오는 자신의 도장을 새롭게 만들게 됩니다. 카를로스 그레이시가 최고 수장이라고 하긴 했지만, 실질적으로 그레이시 2세들을 키우고 주짓수를 가르친건 엘리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레이시 2세들의 지도자이자 아버지로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습니다. 그리고 그레이시 가문 최강의 사나이로 기록된 홀스 그레이시 역시 엘리오가 길렀죠. 홀스 그레이시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그레이시 챌린지

그레이시 가문에선 어떻게 하면 주짓수를 더 알릴 수 있을까 고민한 끝에, 그레이시 챌린지가 탄생합니다. 그레이시 챌린지는 그 누구든 상관없으니 그레이시 도장에 찾아와 싸움을 걸어달라는 챌린지였고, 신문에 광고를 할 정도로 당시 그레이시 가문의 자신감은 하늘을 찔렀습니다. 실제로 찾아오는 강자들을 차례대로 격파하며 나날이 주짓수의 명성을 올려갔죠. 도전자들은 출혈은 기본이고 코와 이를 포함해 여기저기 부러지며 패배를 맞이했습니다. 현대에 와서 주짓수라고 하면 스포츠 주짓수를 많이 떠올리는데 그 당시 주짓수는 타격도 가능한 일명 '실전 주짓수'라고 불리던 주짓수만 존재했던 시기였습니다. 그레이시 챌린지를 통해 충분히 그레이시의 명성을 올릴 수 있었지만 전 세계에 알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했고, 비슷한 시기에 주짓수보단 이소룡의 화려한 무술에 사람들이 매료되어 있었기에 그레이시 챌린지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했었죠.

 

UFC 대회의 탄생

그렇게 탄생한 대회가 바로 UFC 입니다. UFC 대회의 최초 목적은 그레이시 주짓수가 얼마나 강한지 증명하기 위한 대회였고, 그레이시 2세들 중 가장 체격이 적은 호이스 그레이시를 출전시켜 더 크고 무거운 강자들을 격파하며 UFC 우승을 했고. 이는 전 세계에 주짓수의 유명세를 떨치기에 전혀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이 당시의 UFC는 깨물기, 낭심 때리기도 가능했던 아주 야만적인 대회였습니다. 그런 대회에서 당당하게 우승을, 그것도 전혀 우승할 것 같지 않은 사나이가 우승했으니 그레이시 가문의 주짓수 홍보는 대성공이라고 볼 수 있었죠.

 

현대의 주짓수

이후 대중화가 되기 위해 스포츠화 된 주짓수가 현재의 주짓수이며, 실전성 논란은 끊임없이 나오는 주제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실전성을 논하려면 실전 주짓수를 대입해야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스포츠 주짓수로 실전성에 대입하는게 가장 큰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실제로 실전 주짓수는 지금도 교육을 하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교육받을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실전 주짓수와 스포츠 주짓수 사이에 있는 컴뱃 주짓수 역시 실전성을 더한 주짓수로 정말 실전에서 사용할 생각이 있으시다면 실전 주짓수나 컴뱃 주짓수를 수련하시거나 스포츠 주짓수와 함께 mma나 무에타이, 킥복싱 같은 타격류 무술을 익히는 게 가장 적합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주짓수의 역사를 마치며

주짓수의 역사에 대해 간략하게 알아봤는데요. 주짓수의 최고 수장은 카를로스 그레이시라고 적긴 했습니다만, 실질적 최고 수장은 엘리오 그레이시라고 주장하는 이도 적지 않습니다. 저 또한 엘리오 그레이시가 주짓수를 창시한 인물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마에다 미츠요에게 배운 유술은 주짓수와 닮아있지만 주짓수가 추구하는 방향에 더 적합한게 엘리오가 변형한 주짓수이지 않나 싶습니다. 실제로도 주짓수 명성에 많은 기여를 했던 게 엘리오 이기도 했지요.

댓글